링거바늘 꽂고 수염 기르고 마스크 쓰고… “휠체어 출두 원조격은 정태수 前한보회장” 정치인·기업인뿐 아니라 일반인도‘동정 쇼’ 마이클 잭슨도 환자복 바지 입고 법정 출두
신정아씨가 검찰에 붙잡혀 가면서 갑자기 몸을 휘청거리고 구토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모범택시를 타고 검찰에 출두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피의자나 피고인들이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스처”라고 말한다.
이른바 ‘떼법(군중심리)’에 호소하거나 모성애를 자극해 사법처리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계산된 행위라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가는 ‘휠체어 출두’의 원조는 정태수 전 한보 회장이 꼽힌다. 그는 1997년 한보 비리 사건 당시 휠체어를 탄 채 마스크를 쓰고 링거 주삿바늘까지 꽂고서 법정에 들어가는 장면을 연출, “병든 불쌍한 노인같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04년 대북송금사건 결심공판 때 마스크와 안대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출두했고,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휠체어를 타고 흰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법정에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도 2004년 130억원대 괴자금을 사용한 의혹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낡은 콩코드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 동정심을 자극했다.
2006년 1월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나 궁지에 몰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연구원들과 함께 진행한 ‘눈물의 기자회견’ 역시 여론의 동정심을 유도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동정 쇼’를 한다. 1999년 법무부 훈령이 바뀐 이후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라도 양복 등 평상복을 입고 법정에 설 수 있지만 대부분 수의를 입고 나오는 것이나 특히 사기범들이 수염을 깎지 않고서 재판을 받는 것은 판사의 동정심을 겨냥한 행동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경수 대검찰청 홍보기획관은 “대기업 간부들이 검찰에 불려올 때 일부러 허름한 점퍼를 걸치고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다’는 식의 시위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학)는 “여론의 동정을 사는 사건에서는 판사들이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데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다”면서 “앞으로 배심원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되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동정을 유발하는 말과 행동을 더 자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유명인들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불러 일으키는 ‘작전’을 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2005년 10대 소년 성추행 혐의로 재판 받을 때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독감을 핑계로 재판을 연기한 후 허리 통증을 이유로 슬리퍼와 환자복을 입고 한 시간 늦게 법정에 나타났다. 2002년 12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아내 셰리 블레어가 사기 전과자의 도움으로 고급 빌라를 헐값에 샀다는 ‘셰리 게이트’가 터지자, 그녀는 방송에 출연해 눈물을 흘리며 해명을 했다.
클린턴 전(前) 미국 대통령도 섹스 스캔들과 위증으로 비난을 받았던 98년 당시,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거나 아내 힐러리 클린턴을 공식 석상에 내세우는 등의 방법으로 동정 여론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일보 2007-09-19 11:3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