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그는 그렇게 BBK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까짓 '명함 한 장'에 왜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나선 것일까?
이장춘 전 대사의 정동영 후보 지지 TV방송연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아니, 의문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살아왔던 길과는 다른 후보 지지까지 나서면서 이명박 후보의 '명함 문제'를 끝까지 제기하는 것일까?
그는 얼마 전까지 <조갑제닷컴>에 기고를 할 정도로 보수적인 인사다. 나름대로 열성팬까지 갖고 있는 대표적인 보수 인사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햇볕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죄를 주장하고,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적극 지지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이명박 후보는 안 된다"며 정동영 지지를 선언했다. TV연설에서 그가 밝힌 정 후보 지지 이유는 간명하다. 정 후보가 검찰의 BBK 수사 발표를 무효라고 선언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킬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보수적인 성향의 자신이 대북 문제 등에서 입장을 달리하는 정후보 지지 선언을 하게 된 결단의 배경으로는 대한민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익사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의 이런 말들은 모두 진실일까? 알 수 없다. 지금 같은 불신의 시대에, 또 편의에 따라 간단없이 정치적 행보를 바꾸는 '철새의 시절'에 돌연한 그의 변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보통 '철새'들과는 달라 보인다. 그가 권력을 노려 기회주의적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볼만한 정황은 별로 없다. 그럴 것이었다면 이 전 대사는 명함 문제를 공개하기 전에 십수년 지기인 이명박 후보를 찾아가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모든 여론조사가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우위를 예측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정면으로 거론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반대편에 몸을 의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몸을 의탁하자면 보수진영에서 선택할 수도 있었다. 정직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투지가 가장 확실해 정 후보를 선택했다지만, 정 후보 쪽이 그에게 결코 포근한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만한 경륜의 소유자다. 그의 '진정성'을 마냥 의심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강철군화'라는 한 네티즌은 이 전대사가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선 "이명박 후보의 잘못을 파헤치는 것은 좋지만 그러려면 이회창 후보 진영에 가서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저 반역의 무리들 앞에 서서, 반역자를 위해 연설하는 대사님의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반역의 무리' 앞에서 '반역자'를 위해 연설했다. 주변의 숱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역한 진정한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연설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 않을까 싶다.
"거짓과 부패에 맞서는 투쟁은 이념이나 사상을 위한 투쟁보다도 중요합니다. 진실은 신념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검찰이 자신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자신이 공개한 이명박 후보의 BBK명함을 단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은 데 대해 분개했다.
그는 자신이 BBK명함을 공개한 날 "친구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전화를 해 온 이명박 후보에게 "내 자식이라도 뻔뻔스런 거짓말을 하면 목을 쳐버릴 사람인 것을 몰랐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해 눈을 가리고 평화를 구가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초로의 보수주의자와 햇볕정책의 적자가 될 것임을 자임하고 있는 정동영 후보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은 안된다'는 보수와 개혁의 만남은 신선하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대선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만남일 수 있다.
"진실은 신념보다 중요하다"는 한 보수우파 인사의 육성(肉聲)도 인상적이다. 신념에 따라 진실도 달라질 수 있다지만, '신념' 보다 '진실'을 중시하는 태도야 말로 보수·진보 언론인을 막론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경구일 것이다.
돌연 한 보수우파 인사의 '반역'이 많은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끝없는 추락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본다. 아주 색다른 전망과 연대를 꿈꿔 볼 수도 있겠다.
오마이뉴스 2007.12.13 22:3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9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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