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라도 가보라
바라보면 항상 이쁜/이쁘고 나서 또 이쁜/조그만 간이역/앞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 서 있는/사람들은 별일이야/벌써 가고 있네 어디론가/기차에 탄 듯 바람에 불리듯
-정현종 ‘간이역’ 전문
지난해 문화재청에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골 간이역 1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20세기 초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이땅에 철도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기차역은 기간산업과 생활문화의 변천을 조망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산 것이다. 지금처럼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역은 신문화가 전국적으로 유입되고, 다시 지방의 고유한 문화가 경향 각지로 알려지는 데 통로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하에서는 항일운동이 만주로까지 번져나가는 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역사적으로, 또 사회·문화적으로 그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우리의 옛 모습이 마치 흑백사진처럼 남아 있는 간이역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오래된 간이역 65곳을 대상으로 문헌조사와 관련 전문가의 현지조사를 통해 역사적·건축적 가치와 함께 서정적 가치가 높고 인근 자연풍광이 빼어나 보존가치가 높은 간이역 1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것이다.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간이역은 경춘선 화랑대역, 경의선 일산역, 중앙선 팔당역과 구둔역, 경부선 심천역, 영동선 도경리역, 경전선 남평역, 전라선 율촌역, 동해남부선 송정역, 대구선 동촌역, 문경선 가은역, 장항선 청소역 등이다.
비단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역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간이역들은 대부분 숲과 강, 바다 등에 가깝고 시골의 풍정을 그대로 담고 있어,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하는 추억여행의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할 만하다. 간이역이라 함은 원래 역장이 없는 작은 역을 일컫는데, 그나마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는 역을 배치간이역, 아예 역무원조차 없는 무인역을 무배치간이역이라 한다. 그렇지만 보통 정식 역장과 역무원들이 있다 하더라도 운행횟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작은 시골역을 통틀어 그냥 간이역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추억 속으로 사라져간다’고 했지만 기실 간이역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물동량도 급속히 감소하면서 정식역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간이역 수준의 작은 역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일시적인 역현상으로, 갈수록 영업상의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간이역은 바야흐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4년도에는 시민환경단체인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는 간이역에게 그해 풀꽃상을 시상,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삶’이라는 상의 목적과 꽤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깊어가는 가을, 추억 속으로 떠날 수 있는 간이역 몇 곳을 소개한다.
레일바이크로 가는 구절리역
구절리라는 마을 이름을 들었다/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구절리, 구절리하는 마을 이름이 멀고 험하다/아흔 굽이 길 구부러져 길 끊겨버린 느낌!/나는 문득 홀로 구절리 가고 싶다/돌아갈 길 아예 길이 끊겨도/눈 흘기겠느냐,/눈 흘긴들 어찌 아니 눈물이겠느냐/그립다 그립다 산바람 일고/사랑한다 사랑한다 산꽃 필까/내 속이 이제 구절리였으면 좋겠다 -문인수 ‘구절리’ 전문
강원도 정선아라리 가락을 담고 있는 정선선의 끝자락에 구절리역이 있다. 정선선은 석탄산업이 번창하던 시절, 그 수송을 위해 증산에서 구절리간 45.9㎞ 거리에 놓인 철로를 말한다. 증산에서 출발하면 별어곡, 선평, 정선, 나전, 아우라지를 거쳐 구절리에 이르게 되는데, 구절리는 마치 구절양장(九折羊腸)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구절양장을 구비 돌아 마침내 구절리역에 이르면 첩첩산중에 가로막혀 기차 역시 더는 나아갈 수 없다.
석탄산업의 퇴조와 함께 겨우 한 냥짜리 객차를 매달고 달리던 정선선 꼬마열차는 그나마 2004년부터는 아우라지역까지만 다니고, 더는 쓸모가 없어진 구절리역은 이제 아우라지역을 오가는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정선군에서는 구절리역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레일바이크 시설을 도입하면서 폐열차를 이용한 ‘여치의 꿈’이라는 여치 모양의 열차카페를 연 데 이어 정선의 맑은 물에 산다는 어름치 모양을 한 어름치카페를 열고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관광객들은 레일바이크를 타고 심산유곡을 달리는 기분에 환호성을 질러대기 십상이지만, 역 구내의 건널목에 서서 아우라지 쪽을 바라보면 멀리 아스라한 골짜기 사이로 지금이라도 금방 ‘칙칙폭폭’ 하며 기차가 들어올 것만 같아 잠시 아련한 추억에 젖기도 한다.
구절리는 가을이 깊어가면 노추산 일대의 단풍이 더없이 수려하고, 가까이는 오장폭포가 있어 그야말로 구절양장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아우라지 처녀의 전설이 애잔한 아우라지와, 주인아주머니의 수석이야기가 구수한 옥산장도 둘러볼 만하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승부역
경북 봉화 석포에는 승부역이 있는데, 겨울철 환상선눈꽃열차와 함께 가을단풍열차의 경유지로 유명한 곳이다. 승부역 역사 한켠에는 이 역에서 근무하던 한 역무원이 썼다는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이 역의 처지를 잘 말해준다. 그만큼 오지역이라는 뜻이지만 역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만만치 않은 듯 그 글귀 뒤에는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1956년 영암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승부역은 역시 산업기지로서의 임무를 띠고 있었는데, 역 구내에 서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기념비가 그 내력을 일러주고 있다.
영암선 개통기념-단기 4282년 4월 8일 기공, 4288년 12월 3일 준공, 교통부 철도건설국
기차가 아니면 다니기 어려운 승부역은, 지금도 아침저녁 두 차례씩 다니는 기차가 마을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마을 안에는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실정이고, 그나마 눈꽃열차나 단풍열차를 타고 온 손님들을 위해 산나물이나 메밀묵 등 가벼운 음식을 파는 작은 장이 서서 그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태백산맥에 하늘마저 둘러싸일 만큼 오지인 승부는 그만큼 절경이기도 하지만, 마을 이름이 승부(承富)인 것은 아무리 봐도 조금 아이러니하다. 전에는 그래도 주변마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인데, 어떤 이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여서 승부(勝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고, 그 첫 번째 부락이 결둔(結屯, 군이 주둔 집결하는 지역)인 것도 다 그런 연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패키지 열차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경북 영주까지 간 후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한다. 오지로 알려진 봉화에서도 최북단으로, 강원도 태백산맥에 가까운 오지 중 오지인 이곳은 가을이면 단풍이 화려하고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최근 인접지역의 개발로 물이 오염되는 등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가까운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고, 봉화는 송이로 유명해 가을이면 송이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사평역’의 모델 남평역
전남 나주 남평에는 경전선(삼랑진-송정리) 남평역이 있는데, 바로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하겠다고 한 간이역 중의 하나다. 1930년에 준공한 남평역은 77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전쟁 때는 역사가 소실되는 등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광주와 화순을 잇는 중계역으로서 그 임무를 굳건히 수행해왔다. 특히 남평에서 광주로 학교를 다니는 통학생들의 다리 노릇을 하면서 지역 인재의 양성과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최근 남광주역이 없어지면서 그 기능을 크게 상실, 간이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아침저녁으로 순천과 목포를 잇는 무궁화호가 왕복 열 차례 다니기는 하지만 일일 승객이 평균 다섯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하루 종일 타고 내리는 승객이 한 명도 없는 날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도 남평역이 세인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는 것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 때문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사평역’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을 읊은 시이고, 소설 ‘사평역’은 시인과 동향의 작가인 임철우가 그 시를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두 작품 속에서 나오는 사평역이 바로 남평역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평역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신문·잡지 등에 간이역 기사가 나가는 경우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고,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어떨 때는 승객보다 많은 수의 답사객이 다녀가기도 한다.
남평역 다음 역인 앵남역은 더욱 애틋하다. 앵남역은 한때 소위 ‘을종대매소’로서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사설발권역으로 역사건물도 없는, 마치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대기소와 팻말 그리고 건널목으로 이루어진 노천역으로 그야말로 진짜 간이역 같은 간이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나마 손님이 끊기면서 지난해 11월부터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앵남역은 멸종해가는 간이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인 셈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몹시도 버거운 날엔/앵남역에 가보라//앵두꽃 눈물처럼/망울져 흔들리는 봄날/남평에서 화순 가는 중간쯤/이 땅의 기차역 족보에 엄연히 올라 있는/앵남역에 앉아/기차를 기다려보라//더러는 떠나고 더러는 돌아오는/철벽바위로 단단하던 일상도/알고 보면 우스운 일//역장도 매표원도 없어/우리가 행선지를 깜빡/잊은들 대수리//잊은 김에 뜨겁던 그 여름도 잊고/잊은 김에 뜨겁던 그 겨울도 잊고/꿈결인양 구부러지는 산모퉁이를/탕아처럼 휙휙 지날 때쯤이면//다아 잊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잊어버리고//앵두꽃 가지 사이로/괜시리 봄비 뿌려대는/그런 날이면/혼자서라도 앵남역에 가보라 -박혜옥 ‘앵남역’ 전문
하지만 이제 앵남역에 기차는 서지 않는다. 앵남역 가까이에는 도곡온천이 있고, 능주에는 조광조적려유허지가 있다. 화순의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획|유성문<투레 대표> toulei.com
2007 10/16 뉴스메이커 745호
-정현종 ‘간이역’ 전문
지난해 문화재청에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골 간이역 1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20세기 초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이땅에 철도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기차역은 기간산업과 생활문화의 변천을 조망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산 것이다. 지금처럼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역은 신문화가 전국적으로 유입되고, 다시 지방의 고유한 문화가 경향 각지로 알려지는 데 통로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하에서는 항일운동이 만주로까지 번져나가는 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역사적으로, 또 사회·문화적으로 그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우리의 옛 모습이 마치 흑백사진처럼 남아 있는 간이역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오래된 간이역 65곳을 대상으로 문헌조사와 관련 전문가의 현지조사를 통해 역사적·건축적 가치와 함께 서정적 가치가 높고 인근 자연풍광이 빼어나 보존가치가 높은 간이역 1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것이다.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간이역은 경춘선 화랑대역, 경의선 일산역, 중앙선 팔당역과 구둔역, 경부선 심천역, 영동선 도경리역, 경전선 남평역, 전라선 율촌역, 동해남부선 송정역, 대구선 동촌역, 문경선 가은역, 장항선 청소역 등이다.
비단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역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간이역들은 대부분 숲과 강, 바다 등에 가깝고 시골의 풍정을 그대로 담고 있어,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하는 추억여행의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할 만하다. 간이역이라 함은 원래 역장이 없는 작은 역을 일컫는데, 그나마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는 역을 배치간이역, 아예 역무원조차 없는 무인역을 무배치간이역이라 한다. 그렇지만 보통 정식 역장과 역무원들이 있다 하더라도 운행횟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작은 시골역을 통틀어 그냥 간이역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레일바이크로 가는 구절리역
구절리라는 마을 이름을 들었다/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구절리, 구절리하는 마을 이름이 멀고 험하다/아흔 굽이 길 구부러져 길 끊겨버린 느낌!/나는 문득 홀로 구절리 가고 싶다/돌아갈 길 아예 길이 끊겨도/눈 흘기겠느냐,/눈 흘긴들 어찌 아니 눈물이겠느냐/그립다 그립다 산바람 일고/사랑한다 사랑한다 산꽃 필까/내 속이 이제 구절리였으면 좋겠다 -문인수 ‘구절리’ 전문
강원도 정선아라리 가락을 담고 있는 정선선의 끝자락에 구절리역이 있다. 정선선은 석탄산업이 번창하던 시절, 그 수송을 위해 증산에서 구절리간 45.9㎞ 거리에 놓인 철로를 말한다. 증산에서 출발하면 별어곡, 선평, 정선, 나전, 아우라지를 거쳐 구절리에 이르게 되는데, 구절리는 마치 구절양장(九折羊腸)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구절양장을 구비 돌아 마침내 구절리역에 이르면 첩첩산중에 가로막혀 기차 역시 더는 나아갈 수 없다.
석탄산업의 퇴조와 함께 겨우 한 냥짜리 객차를 매달고 달리던 정선선 꼬마열차는 그나마 2004년부터는 아우라지역까지만 다니고, 더는 쓸모가 없어진 구절리역은 이제 아우라지역을 오가는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정선군에서는 구절리역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레일바이크 시설을 도입하면서 폐열차를 이용한 ‘여치의 꿈’이라는 여치 모양의 열차카페를 연 데 이어 정선의 맑은 물에 산다는 어름치 모양을 한 어름치카페를 열고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관광객들은 레일바이크를 타고 심산유곡을 달리는 기분에 환호성을 질러대기 십상이지만, 역 구내의 건널목에 서서 아우라지 쪽을 바라보면 멀리 아스라한 골짜기 사이로 지금이라도 금방 ‘칙칙폭폭’ 하며 기차가 들어올 것만 같아 잠시 아련한 추억에 젖기도 한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승부역
경북 봉화 석포에는 승부역이 있는데, 겨울철 환상선눈꽃열차와 함께 가을단풍열차의 경유지로 유명한 곳이다. 승부역 역사 한켠에는 이 역에서 근무하던 한 역무원이 썼다는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이 역의 처지를 잘 말해준다. 그만큼 오지역이라는 뜻이지만 역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만만치 않은 듯 그 글귀 뒤에는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1956년 영암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승부역은 역시 산업기지로서의 임무를 띠고 있었는데, 역 구내에 서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기념비가 그 내력을 일러주고 있다.
영암선 개통기념-단기 4282년 4월 8일 기공, 4288년 12월 3일 준공, 교통부 철도건설국
기차가 아니면 다니기 어려운 승부역은, 지금도 아침저녁 두 차례씩 다니는 기차가 마을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마을 안에는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실정이고, 그나마 눈꽃열차나 단풍열차를 타고 온 손님들을 위해 산나물이나 메밀묵 등 가벼운 음식을 파는 작은 장이 서서 그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태백산맥에 하늘마저 둘러싸일 만큼 오지인 승부는 그만큼 절경이기도 하지만, 마을 이름이 승부(承富)인 것은 아무리 봐도 조금 아이러니하다. 전에는 그래도 주변마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인데, 어떤 이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여서 승부(勝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고, 그 첫 번째 부락이 결둔(結屯, 군이 주둔 집결하는 지역)인 것도 다 그런 연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패키지 열차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경북 영주까지 간 후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한다. 오지로 알려진 봉화에서도 최북단으로, 강원도 태백산맥에 가까운 오지 중 오지인 이곳은 가을이면 단풍이 화려하고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최근 인접지역의 개발로 물이 오염되는 등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가까운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고, 봉화는 송이로 유명해 가을이면 송이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사평역’의 모델 남평역
현재 아침저녁으로 순천과 목포를 잇는 무궁화호가 왕복 열 차례 다니기는 하지만 일일 승객이 평균 다섯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하루 종일 타고 내리는 승객이 한 명도 없는 날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도 남평역이 세인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는 것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 때문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사평역’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을 읊은 시이고, 소설 ‘사평역’은 시인과 동향의 작가인 임철우가 그 시를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두 작품 속에서 나오는 사평역이 바로 남평역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평역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신문·잡지 등에 간이역 기사가 나가는 경우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고,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어떨 때는 승객보다 많은 수의 답사객이 다녀가기도 한다.
남평역 다음 역인 앵남역은 더욱 애틋하다. 앵남역은 한때 소위 ‘을종대매소’로서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사설발권역으로 역사건물도 없는, 마치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대기소와 팻말 그리고 건널목으로 이루어진 노천역으로 그야말로 진짜 간이역 같은 간이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나마 손님이 끊기면서 지난해 11월부터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앵남역은 멸종해가는 간이역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인 셈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몹시도 버거운 날엔/앵남역에 가보라//앵두꽃 눈물처럼/망울져 흔들리는 봄날/남평에서 화순 가는 중간쯤/이 땅의 기차역 족보에 엄연히 올라 있는/앵남역에 앉아/기차를 기다려보라//더러는 떠나고 더러는 돌아오는/철벽바위로 단단하던 일상도/알고 보면 우스운 일//역장도 매표원도 없어/우리가 행선지를 깜빡/잊은들 대수리//잊은 김에 뜨겁던 그 여름도 잊고/잊은 김에 뜨겁던 그 겨울도 잊고/꿈결인양 구부러지는 산모퉁이를/탕아처럼 휙휙 지날 때쯤이면//다아 잊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잊어버리고//앵두꽃 가지 사이로/괜시리 봄비 뿌려대는/그런 날이면/혼자서라도 앵남역에 가보라 -박혜옥 ‘앵남역’ 전문
하지만 이제 앵남역에 기차는 서지 않는다. 앵남역 가까이에는 도곡온천이 있고, 능주에는 조광조적려유허지가 있다. 화순의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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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추억 | 철도박물관 한국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 간 철도가 최초로 개통된 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꾸준한 개발과 노력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천지를 진동시키며 기적을 울리던 증기기관차는 사라지고, 서울-부산 간을 2시간대에 운행하는 초고속 KTX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이 고스란히 철도박물관에 담겨 있다. 철도박물관은 1981년 문을 연 철도고등학교 실습장 내 철도기념관을 모태로 1988년 경기 의왕시 부곡에 개관했다. 철도박물관은 철도역사실, 철도차량실, 모형철도 파노라마실, 전기·신호·통신실, 시설·보선실, 운수·운전실, 미래철도실 등 분야별로 구성·전시되어 있으며, 옥외 전시장에는 얼마 전 만해도 철로 위를 달리던 각종 차량과 보선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다. ■ 관람시간 _ 3월~10월 09:00~18:00, 11월~2월 09:00~17:00 ■ 관람료 _ 일반 500원(단체 400원), 어린이/청소년 300원(단체 200원) ■ 휴관일 _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다음날, 1월 1일, 설·추석 연휴 ■ 관람문의전화 _ 031-461-3610 |
기획|유성문<투레 대표> toulei.com
2007 10/16 뉴스메이커 7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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