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하면 우선 하얗게 센 머리칼이 떠오른다. 그러나 상형문자의 세계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특징이다. 상형자로 분류되는 長(장)자는 긴 머리칼을 날리는 노인의 모습이라고 한다(<그림 1>). 검은색 잉크와 펜 하나로 흰 머리칼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 궁여지책으로 머리칼 날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백발'은 아니지만 어쨌든 노인의 특징으로 머리칼을 생각했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머리칼을 자르는 일 없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어쩌면 머리칼이 길다는 것으로 나이가 들었음을 나타냈을 수도 있다. 의미 부여에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모습에 대해, 자신의 머리칼조차 제대로 간수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 역시 '사람+머리칼'의 복합 상형이다. 상형문자라는 것이 별다른 설명 없이 그림만 보고도 무엇을 나타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복합 상형은 그림만 가지고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다. 사전에 약속된 내용이 없다면 말이다. 따라서 이런 이해는 남아 있는 글자꼴과 남아 있는 의미를 가지고 꿰맞추기를 한 것일 뿐이다.
長의 옛 글자꼴을 보면 아래는 사람 모습인 人(인)자고 위는 세 개의 선이다. 세 선의 방향은 여러 가지지만, 지금 글자꼴에서는 세로획에 세 개의 가로획이 붙어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 이것이 머리칼로 해석된 것인데, 이왕 머리칼로 보자면 '터럭'인 毛(모)자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長자 전체를 한덩어리로 놓고 보면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長자의 옛 모습은 旡(기)나(<그림 2, 3>) 兂(잠)자와 흡사하다. 兂은 潛(잠) 같은 글자의 발음 뿌리인데, 旣(기)의 오른쪽 旡와 지금 모습에서도 미세한 차이뿐이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旡와 兂은 본래 같은 글자였다가 분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旡 쪽은 발음이 많이 달라졌고 兂은 長의 발음과 흡사한 상태로 남았다. 역시 旡·兂과 같은 글자였다가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 글자로 元(원)자가 있고, '으뜸'이라는 元의 의미는 '어른'이라는 長의 의미와 직결된다.
노인의 모습을 그렸다는 글자로 또 老(노)가 있다. 역시 긴 머리칼을 특징으로 해서 '컨셉'이 長자와 비슷한데, 여기서는 지팡이까지 짚었다는 설명이다(<그림 4>). 지팡이 부분은 匕(비)자 형태여서, 이를 '변하다'인 化(화)의 생략형으로 보고 머리칼이 하얗게 변한(化) 것을 나타낸 회의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상형이라면 長자와 구분할 도리가 없다. 지팡이가 더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長과 老의 의미 차이를 반영한 것이 아니어서 상형적인 해석은 곤란하다. 두 글자의 의미 차이가 없으니 그것이 지사부호가 될 수도 없다.
더욱 난감한 것은, 금문 단계에 이르면 長자의 모습이 老자에 접근해 의미상으로는 물론 형태상으로도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림 5>는 長의 금문인데, 아랫부분에 匕자의 모습이 완연해 老의 금문인 <그림 6>과 비슷하다. 오히려 윗부분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건 같은 머리칼의 모습이라니 변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의미, 같은 모양의 글자를 발음만 다르게 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다.
이걸 설명할 방법은 있다. 옛날 중국은 여러 개의 정치 단위로 나뉘어 있었다. 지금 남-북한만 해도 언어 이질화 얘기가 많은데, 고대에 여러 정치 단위로 나뉘어 있었던 중국에서는 각 정치권마다 문자 생활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사투리도 있고, 어떤 경우엔 종족 자체가 달라 전혀 다른 말을 썼을 수 있다.
'노인' 또는 '어른'이라는 말도 정치권마다 조금씩, 혹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발음이 '장'과 '로'로, 얼핏 보아도 큰 차이가 날 정도다. 그렇다면 長과 老는 같은 개념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던 것이었을 수 있다. 그것이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후, 또는 그 이전이라도 교류가 활발해져 사실상 같은 문화권으로 합쳐지면서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발음을 지니게 된 것이겠다.
長과 老의 전체적인 형태가 비슷한 것은 문화 교류로 설명될 수 있다. 이웃 나라지만 같은 문자 체계인 것이다. 다만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 달랐기 때문에 비슷한 글자를 발음만 달리 표현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老의 匕 부분이 눈에 띈다. 그것을 발음기호로 보면 長에 발음기호 匕를 붙여 사투리 또는 외국어를 표현한 형성자일 수 있다. 의미는 長이지만 발음은 匕라는 것이다. 匕는 지금 '비' 발음이지만 초성의 ㅂ은 ㅁ과 발음 부위가 같고 ㅁ은 또 ㄹ과 가깝다. ㅂ>ㅁ>ㄹ의 변화고, 老를 발음기호로 쓴 姥(모)·峔(모) 같은 글자의 발음은 그 연결고리다.
長의 글자꼴이 <그림 5>처럼 변한 것은 長과 老를 쓰던 정치권들간의 역학 관계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老라는 글자를 쓰던 정치권의 힘이 강해지자 長을 쓰던 정치권에도 老의 글자꼴이 들어와 그것이 우세해졌지만 발음은 여전히 '장'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長자는 본래 老자의 이체자였는데 長의 글자꼴을 '정복'한 것이다. 본래의 長에 발음기호 匕를 붙여 형성자 老를 만들었다고 보면, 아들이 아비를 잡아먹은 격이다.
考(고) 등 여러 글자의 의미 요소로 쓰이는 耂는 지금 老의 간략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렇게 보면 그것이 長의 본래 모습이다. 지금 長의 마지막 두 획은 匕의 변형이고, 나머지 부분이 長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반대로, 부수자의 하나인 髟(표) 같은 글자에 들어간 镸은 老의 변형인 長의 간략형이어서 본래는 老의 또 다른 이체자인 셈이다.
프레시안 2008-02-14 오후 11:33:55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211111800
'백발'은 아니지만 어쨌든 노인의 특징으로 머리칼을 생각했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머리칼을 자르는 일 없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어쩌면 머리칼이 길다는 것으로 나이가 들었음을 나타냈을 수도 있다. 의미 부여에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모습에 대해, 자신의 머리칼조차 제대로 간수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 역시 '사람+머리칼'의 복합 상형이다. 상형문자라는 것이 별다른 설명 없이 그림만 보고도 무엇을 나타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복합 상형은 그림만 가지고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다. 사전에 약속된 내용이 없다면 말이다. 따라서 이런 이해는 남아 있는 글자꼴과 남아 있는 의미를 가지고 꿰맞추기를 한 것일 뿐이다.
長의 옛 글자꼴을 보면 아래는 사람 모습인 人(인)자고 위는 세 개의 선이다. 세 선의 방향은 여러 가지지만, 지금 글자꼴에서는 세로획에 세 개의 가로획이 붙어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 이것이 머리칼로 해석된 것인데, 이왕 머리칼로 보자면 '터럭'인 毛(모)자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長자 전체를 한덩어리로 놓고 보면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長자의 옛 모습은 旡(기)나(<그림 2, 3>) 兂(잠)자와 흡사하다. 兂은 潛(잠) 같은 글자의 발음 뿌리인데, 旣(기)의 오른쪽 旡와 지금 모습에서도 미세한 차이뿐이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旡와 兂은 본래 같은 글자였다가 분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旡 쪽은 발음이 많이 달라졌고 兂은 長의 발음과 흡사한 상태로 남았다. 역시 旡·兂과 같은 글자였다가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 글자로 元(원)자가 있고, '으뜸'이라는 元의 의미는 '어른'이라는 長의 의미와 직결된다.
노인의 모습을 그렸다는 글자로 또 老(노)가 있다. 역시 긴 머리칼을 특징으로 해서 '컨셉'이 長자와 비슷한데, 여기서는 지팡이까지 짚었다는 설명이다(<그림 4>). 지팡이 부분은 匕(비)자 형태여서, 이를 '변하다'인 化(화)의 생략형으로 보고 머리칼이 하얗게 변한(化) 것을 나타낸 회의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상형이라면 長자와 구분할 도리가 없다. 지팡이가 더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長과 老의 의미 차이를 반영한 것이 아니어서 상형적인 해석은 곤란하다. 두 글자의 의미 차이가 없으니 그것이 지사부호가 될 수도 없다.
더욱 난감한 것은, 금문 단계에 이르면 長자의 모습이 老자에 접근해 의미상으로는 물론 형태상으로도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림 5>는 長의 금문인데, 아랫부분에 匕자의 모습이 완연해 老의 금문인 <그림 6>과 비슷하다. 오히려 윗부분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건 같은 머리칼의 모습이라니 변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의미, 같은 모양의 글자를 발음만 다르게 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다.
이걸 설명할 방법은 있다. 옛날 중국은 여러 개의 정치 단위로 나뉘어 있었다. 지금 남-북한만 해도 언어 이질화 얘기가 많은데, 고대에 여러 정치 단위로 나뉘어 있었던 중국에서는 각 정치권마다 문자 생활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사투리도 있고, 어떤 경우엔 종족 자체가 달라 전혀 다른 말을 썼을 수 있다.
'노인' 또는 '어른'이라는 말도 정치권마다 조금씩, 혹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발음이 '장'과 '로'로, 얼핏 보아도 큰 차이가 날 정도다. 그렇다면 長과 老는 같은 개념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던 것이었을 수 있다. 그것이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후, 또는 그 이전이라도 교류가 활발해져 사실상 같은 문화권으로 합쳐지면서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발음을 지니게 된 것이겠다.
長과 老의 전체적인 형태가 비슷한 것은 문화 교류로 설명될 수 있다. 이웃 나라지만 같은 문자 체계인 것이다. 다만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 달랐기 때문에 비슷한 글자를 발음만 달리 표현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老의 匕 부분이 눈에 띈다. 그것을 발음기호로 보면 長에 발음기호 匕를 붙여 사투리 또는 외국어를 표현한 형성자일 수 있다. 의미는 長이지만 발음은 匕라는 것이다. 匕는 지금 '비' 발음이지만 초성의 ㅂ은 ㅁ과 발음 부위가 같고 ㅁ은 또 ㄹ과 가깝다. ㅂ>ㅁ>ㄹ의 변화고, 老를 발음기호로 쓴 姥(모)·峔(모) 같은 글자의 발음은 그 연결고리다.
長의 글자꼴이 <그림 5>처럼 변한 것은 長과 老를 쓰던 정치권들간의 역학 관계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老라는 글자를 쓰던 정치권의 힘이 강해지자 長을 쓰던 정치권에도 老의 글자꼴이 들어와 그것이 우세해졌지만 발음은 여전히 '장'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長자는 본래 老자의 이체자였는데 長의 글자꼴을 '정복'한 것이다. 본래의 長에 발음기호 匕를 붙여 형성자 老를 만들었다고 보면, 아들이 아비를 잡아먹은 격이다.
考(고) 등 여러 글자의 의미 요소로 쓰이는 耂는 지금 老의 간략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렇게 보면 그것이 長의 본래 모습이다. 지금 長의 마지막 두 획은 匕의 변형이고, 나머지 부분이 長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반대로, 부수자의 하나인 髟(표) 같은 글자에 들어간 镸은 老의 변형인 長의 간략형이어서 본래는 老의 또 다른 이체자인 셈이다.
프레시안 2008-02-14 오후 11: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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