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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시니어

고령화 마을 '경제시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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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임실시장.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자전거 뒤에 태운 채 힘겹게 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옆집에 사는 할머니인데 다리가 불편해 이동할 때마다 태워드린다”고 말했다.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서로 도우며 살고 있었다. /임실=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화장품? 한달에 1개 팔릴까 말까…

'초고속 고령화' 전북 임실 가봤더니

65세 이상 인구비율 전국 최고

불황에 노년층 소비 '직격탄'

목욕탕·아동복 상점도 사라져


"그냥 문만 열어놓고 있는 거예요."

지난달 28일 오후 2시쯤 전북 임실군 임실읍. 텅 빈 점포 안에서 책을 읽고 있던 '미인방화장품'의 김용주(여·58) 사장은 "한 달에 화장품 하나 팔기도 힘들다"며 "가게를 동네 사랑방으로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5년 전만 해도 임실엔 4~5군데의 화장품 가게가 있었지만 지금은 2개만 남았다. 김 사장은 "우리는 시계방과 겸업하고 다른 한 가게는 속옷을 함께 판다"며 "젊은 사람은 거의 떠나고 노인들만 있는데 화장품이 팔리겠느냐"고 했다.

임실을 보면 '20년쯤 뒤의 대한민국'이 보인다. 임실은 시·군·구 중 인구 고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된 곳. 2005년 인구총조사에서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33.8%에 달해 전국 최고였다. 다만 그 후 사망·이사 등으로 65세 인구가 자연 감소해 올해 6월 현재 노인인구 비율은 27.7%로 떨어졌다.

고령화가 고용 감소를 초래해 소비를 줄이고 경제 전반에서 활력을 떨어뜨리는 '고령화 쇼크'가 임실 같은 곳에서 먼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행 배성종 과장은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고령화 쇼크가 눈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체의 노인인구(65세 이상) 비율은 올해 10.3%에서 2030년 24.1%로 높아져 현재의 임실과 비슷해진다. 이후 2050년에는 38.2%로 세계 최고가 될 전망이다.

임실을 보면 20년 후 대한민국이 보인다

고령화는 보이지 않게, 그리고 천천히 경제를 마비시킨다. 늙어가면서 씀씀이를 줄이기 때문에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고용도 갉아 먹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경기가 확 살아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고령화 쇼크'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재앙이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실 읍내에 있던 목욕탕도 손님이 줄어 최근 문을 닫았다. 임실나래노인복지센터의 김보숙 원장은 "임실 읍내에 하나 있던 목욕탕이었는데 문을 열지 않아 목욕봉사를 못하고 있다"며 "오는 9월에 새 목욕탕이 문을 연다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복지센터가 방문해서 돌봐줘야하는 노인도 80명에서 145명으로 늘었다.

임실에서 옷 장사를 하는 이모(40)씨는 "아동복을 팔다가 워낙 장사가 안 돼 4년 전부터 노인들이 좋아하는 싼 옷들을 갖다 놓았는데, 요즘엔 만원 넘어가면 잘 안 팔린다"고 말했다.

"최근엔 묘터 거래밖에 없어"

부동산 시장도 침체돼 있다. 임실시장 앞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양모(49)씨는 "일이 없으니 주인이 자주 가게를 비운다"며 "최근엔 고령화와 이장수요로 묘터 거래만 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임실시장 인근에서 플랜카드 제작 등 광고업을 하는 진모(51)씨는 "식당이 문을 열고 공사를 해야 간판을 다는데 일감이 없다"며 "요양원에 들어갈 환자 모집 플래카드 몇 개와 관청에서 발주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박모(여·43) 사장은 "2~3년 전까지는 노인정에서 분기별로 한 번에 20~30그릇 시켜 자장면 파티라도 했는데 요즘엔 그것도 안 한다"고 말했다.

임실군이 고령화 쇼크를 극복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지역특산물과 관광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군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임실군 관계자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임실치즈피아' 등 자연친화적인 관광지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치즈마을에는 매년 수만명이 찾고 있어 출발이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지갑 닫는 베이비붐 세대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소비는 이미 줄어들고 있다. 소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714만명)가 2005년부터 50대에 접어들면서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본지가 BC카드에 2004년과 2007년의 카드사용액을 비교해본 결과 베이비붐 세대가 물건을 사고 카드를 긁은 액수는 2004년엔 전체의 25.4%를 차지했지만 2007년엔 20.1%로 급감했다. 이 연령층이 같은 기간 해외에서 카드를 쓴 비율도 전체의 20.7%에서 17.9%로 떨어졌다.

조선일보 2008-08-27 03:4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6/20080826013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