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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시니어

두 번째 인생 불태우는 노익장 '신입사원들'


노동부 고용지원 프로그램 '노크'…고령자 취업 성공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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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기회를 덜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다. 저녁의 황혼빛이 사라지면 하늘은 낮에 볼 수 없었던 별들로 가득찬다'. 미국 낭만파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의 '노인 예찬'이다.

그는 열심히 시를 쓰고 후학을 가르치는 등 활기찬 노년을 보냈다. 그의 친구가 또래 보다 훨씬 밝고 싱그러운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정원에 서 있는 나무를 보게. 이제는 늙은 나무지. 그러나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네. 그것이 가능한 건 저 나무가 매일 조금이라도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생각하지 말자.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기에게 암시를 주는 것, 그것이 롱펠로우를 '영원한 청년'으로 살게한 비결이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외롭고 쓸쓸하다.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온 힘을 쏟았건만 나이든 지금 사회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고령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한탄만 할 것인가.

롱펠로우 처럼 사고의 방식을 달리해 '제 2의 인생'에 도전해보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지 말고 감을 따러 올라가보자. 분명 좁기는 하지만 길은 열려 있다. 여기 그들이 있다.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목표를 이뤄가는 '노인아닌 노인들'을 만나봤다.

일하는 맛을 처음 알았어
김정희(53), 김영희(53), 정덕순(61) 여성트리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다. 준고령층에 해당하는 이들은 노동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범적으로 시작한 '뉴스타트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장을 얻게 됐다. 부산지역 첫 케이스다.

이들은 지난해 부산 노인일자리박람회에서 부산지방노동청 종합고용지원센터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렸다. 아이들 키우느라 대문밖 사정에 어두웠지만 '늦깎이 직장인'에 대한 열정 하나로 뛰어든 것이다.

3개월간의 노인가정 도우미 실습과 면접, 그리고 취업 후 현장교육(3주) 등 세차례의 관문을 통과한 이들은 다음달 10일이면 뿌듯한 심정으로 월급봉투를 받게된다. 3 대 1의 경쟁을 딛고 일어선 이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삶에 대한 불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이들은 하루 4시간씩 노인가정을 방문해 도우미로서 해야할 일들을 익혔다. 실습기관인 효원노인재가복지센터에서 도우미 정신교육과 수발, 케어 이론을 배워 현장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세탁에서 병원 동행과 케어, 식사·가사 수발은 물론 관공서 일처리까지 해주는 고단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노인용품을 소개하고 요양시설에 대한 설명까지 맡았다.

복지센터 김광태 사무국장은 "단순한 일로 생각하면 안되요. 상당수 지원자들이 고개를 흔들며 포기할 정도입니다. 노동강도가 세고 전문적인 지식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일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이들 트리오는 운이 좋았다. 실습을 마치자 곧바로 취업의 문이 열린 것이다. 안심생활지원사업단의 면접에 응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됐다. 또다시 이론 2주와 현장교육 1주의 고된 일정을 거쳤다. 노인들의 생활습성과 목욕, 병수발, 노인성 질환 교육, 위관식사(호스를 통해 식사하는 것), 욕창 관리 등 세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일을 맡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근무한다. 주 5일 근무에 월급 78만 원을 받는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전에 했던 아르바이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융자를 받은 애들 학자금 이자와 쌀값 부식비는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점심값과 차비 지원이 안되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돈없고 나이들고 병든게 문제입니다. 가정을 가보면 똑 같아요. 정말 서글픈 느낌이 들더라구요. 노인들을 대하며 제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욱 잘 돌봐드려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사정만 허락한다면 용돈이라도 드리겠는데…" "취업해서 월급받는 것 못지않게 열심히 봉사해야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이 아파서, 혹은 사업실패로 인해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자식을 키워서 대학에 보내고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생활이 안되는데 뭐라도 해야지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여러군데 해봤지만 보수가 적고 마음에 들지않아 적잖이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려운 시험을 거치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니 안심이 되네요." "돈도 돈이지만 사회를 위해 조그마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일하는 맛을 알게 된 거지요."

삼총사는 오는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실시에 대비해 이제 또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두번째 인생

부산 사하구 장림동 콘택트렌즈 제조업체인 (주)엔보이비젼은 최근 고민(?)을 안게 됐다. 60대 노인 두 명이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바람에 정년 개념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김영득(60), 정다훈(61)씨. 이들 역시 뉴스타트 프로그램을 통해 '제2의 직장'을 얻었다. 고령자구인구직의 날 만남에서 이 회사 안성호(42) 사장과 만나 연을 맺었다.

지난해 11월 19일부터 일을 시작해 3개월 실습이 끝난 지난 20일 정규 직원으로 채용됐다. 3명이 시작했는데 1명은 중도 탈락하고 김씨와 정씨가 역경을 헤친 끝에 '백수'에서 해방되는 행운을 안았다. 양산에서 박스공장일이 힘들어 포기한 뒤 어슬렁거리며 다른 일들을 기웃거리던 슬픈 추억은 이제 끝이다.

집에서 마누라 눈치보며 어영부영 살던 괴로움도 어느덧 저만치 물러앉았다. '아직 청춘이야.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두 사람의 공통적인 각오다.

"30년 군무원 생활을 마치고 나오니 사회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취업 낙방을 수없이 겪었어요.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나 생각하니 잠이 안오더군요. 이제 번듯한 직장에서 신명나게 일하게 됐으니 얼마나 기분좋은지 모릅니다(김)." "자개를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손기술이 있는데 써먹을데가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요. 그런데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게 된데다 정식 직원까지 되니 감개무량합니다(정)."

이들은 새 삶에 올인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출퇴근 시간만 2시간인 먼 거리이지만 지금까지 결근은 물론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안 사장도 두 명의 성실성을 인정해 하루 4시간인 실습시간에 추가로 4시간 임금을 얹어서 하루 8시간 근무를 시켰다. 실습때부터 정규직과 다를 바없이 일을 한 것이다.

"하루 4시간 실습은 너무 짧습니다. 반나절 일하고 반나절은 출퇴근하게 되면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노동부에서도 실습시간을 하루 6시간에서 8시간으로 늘려줬으면 고맙겠습니다." 안 사장의 말이다.

김씨와 정씨는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온다. 근무시간은 철저히 지킨다. 콘택트렌즈 중간공정(재료 배합)과 최종 검사파트에서 일하는 이들은 100% 제 값(?)을 한다.

국제신문 최원열 기자 cwyeol@kookje.co.kr / 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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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 2008-02-25 11:0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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