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챔피언들의 인생은 지금 몇 라운드일까
'미남 복서' 박찬희, 空士에서 복싱 가르쳐
유명우, 고깃집 운영… 백인철, 건설회사 다녀
장정구 WBC 라이트플라이급 “운동 너무 힘들어 은퇴후 조깅도 안해 담배도 못 끊겠고… 거의 매일 술 마셔”
세계를 호령한 복싱 챔피언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개를 숙였다. 지난 5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최요삼 WBO 라이트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의 영결식 자리에서였다. 권투인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서 말이 없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모인 챔피언들의 겉모습에선 그들의 삶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하나의 정점(頂點)을 지나온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44)는 여전히 '짱구' 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숱이 줄어 현역시절처럼 동그란 모양은 아니었지만 파마머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요삼이가 갔으니 이제 내가 복싱계에서 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요삼이 소속된 용프로모션의 대표로 이름을 걸고 있었다.
복싱 프로모션 대표를 제외하면 지금 장씨가 가지고 있는 직함은 두 개. 건설회사 사장과 한나라당의 자원봉사단체 단장이다. 하지만 그는 "모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다"라며 "은퇴한 이후 나 혼자서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12살 때부터 복싱만 해온 사람"이라며 "링에서 주먹 쓰는 일 말고 한 게 없으니 사회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은퇴한 이후로 조금도 운동을 하지 않는다. 권투는커녕 골프도, 테니스도 안 하고, 조깅조차 안 한다고 한다. 그는 "운동할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운동이 싫어졌다"며 "1980년에 프로 데뷔해서, 경기할 때마다 10㎏씩 살을 뺐으니 싫을 만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현재 체중은 62㎏.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고, 말하는 내내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김태식 WBA 플라이급 갈빗집·당구장·커피숍… 하는 족족 안풀려 “챔피언 키우겠다” 25년만에 복싱으로 U턴
내리찍는 오른손 주먹이 강렬했던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독일병정' 김태식(50)은 지난해 5월 경기도 부천에 체육관을 열었다. 김씨는 "남을 잘 믿은 게 평생의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했던 갈빗집도, 당구장도, 커피숍도, 오퍼상도 모두 다 '아는 사람'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1980년 한 해에만 4억을 넘게 벌었던 그도 몇 번이고 사기를 당하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간신히 다시 중심을 잡은 것은 2000년. 서울 면목동 동부시장 한편에서 돼지고깃집을 열면서다. 그는 "하루 14시간 항정살에 껍데기에 부지런히 굽느라 연탄가스를 엄청 마셨다"며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종팔 IBF·WBA 슈퍼미들급 “술집 차려 큰돈도 만져봤지만… 이젠 건설업으로 새출발 할 작정”
김씨는 25년 만에 권투로 귀향(歸鄕)했다. 그는 "25년이나 기다렸으니 '큰일' 한번 쳐보겠다"며 "복싱을 외면하는 방송사가 모두 달려들 만한 제대로 된 챔피언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전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돌주먹' 문성길(44)씨는 "챔피언도 은퇴하면 원칙을 따르는 평범한 사회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서울 가락동 집 거실에는 '원칙자(原則者)는 불이익(不利益)이 없다'고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철판볶음밥 체인점 4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된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치면서부터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 이 문구를 가훈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선수 생활 마지막 동안 한 제약회사의 이름을 달고 싸웠다. 그는 "회사 이름이 깔릴까봐 다운 안 되려고 엄청 신경 썼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배신이었다. 그와 회사의 계약은 '평생 이사 대우'였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니 그에게 돌아온 것은 '말단 대리 바로 옆자리'였다. 그는 "그나마도 몇 년 후에는 없어지고 사장 아들이 하는 주유소에 주유원으로 보내졌다"며 "억지로 버티면서 내가 챔피언이었던 걸 잊고, 세상을 배웠다"고 말했다.
문성길의 매니저이기도 했던 전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46)는 2005년 12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 한 교회의 목사와 결혼해, 집사로 지내고 있다. 그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교회 일을 처리하는 데 쓰고 있었다. 김씨는 "현역 때부터 챔피언만 따고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며 "체육관도 평생 배운 게 권투라서 운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 WBC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유제두(60)씨는 권투계에서 보기 드문 '안정적인 노년'을 보내고 있다. 유씨는 권투인들이 공인하는 '단 한순간도 링을 떠나지 않은 권투인'이다. 그는 은퇴한 이후로는 체육관을 운영하며 계속해서 권투에 몸담고 있었다.
변정일 WBC 밴텀급 TV해설가·에이전트·프로모터… “복싱 발전하려면 팬들에 볼거리 줘야”
유씨는 서울 독산동에 있는 자기 소유 4층 건물의 4층에 살고 있다. 지하에는 그가 직접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이 있고, 1층부터 3층까지는 세를 주고 있다. 1979년 은퇴한 그는 1983년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파이트 머니로 이 건물을 지었다. 유씨는 "시골 고등학교에서 복싱을 배워 65년부터 지금까지 이것만 하고 살아왔다"며 "복싱을 시작한 이래로 아예 다른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살았으니 난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권투의 대표 브랜드 홍수환(58) 전 WBA 밴텀급,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은 지난해 12월 29일 권투인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뽑혔다. 협의회는 고 최요삼 선수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 챔피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복서들의 단체다. 1997년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 김기수씨가 별세한 이후, 홍씨는 한국 복서들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권투 흥행을 위해 50대에 링 위에 오른 이도 있다. 전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염동균(55)은 지난해 12월 23일 충북 음성체육관에 마련된 링 위에 쓰러졌다. 발이 꼬여 넘어진 슬립다운. 그를 내려다본 상대 선수는 IFBA(국제여성복싱협회) 주니어라이트급 챔피언 우지혜(19). 경기는 주먹에 힘을 싣지 않고 기술만을 겨루는 '메서드 복싱(method boxing)'이었다. 염씨의 현재 직함은 극동서부복싱프로모션 대표다.
염씨는 권투 인기가 바닥을 치던 2001년 잠시 권투계를 떠났었다. 뛰어든 곳은 건설 골재 공급. 그는 거기서 20억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염씨는 "모르는 일을 하다보니 잘 안 됐다"며 "후배들에게도 나를 봐서 절대로 모르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의 '대학생 미남 복서'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51)도 염동균과 함께 지난해 12월 23일 성대결에 나섰다. 박씨는 케이블 방송에서 복싱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있고, 공군사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권투를 가르치고 있다. 선수로 뛸 당시에 잘생긴 얼굴로 인기가 많았던 그는 "얼굴로 득 본 건 하나도 없다"며 "대신 젊은 시절의 나를 쏙 빼닮은 아들은 영화배우 데뷔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 최요삼 선수의 유해를 안치한 납골당의 전무로도 일한다.
문성길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철판볶음밥 체인점 네 곳 운영 “맞아가며 번 돈, 허투루 쓸 순 없지”
중량급으로 80년대를 호령했던 박종팔(48) 전 IBF·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은 은퇴를 '사회라는 새로운 사각 링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을 인생 3라운드가 시작되는 해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1라운드는 권투. 링 위에서 그가 남긴 전적은 53전 46승(39KO승). 한국에서 그만큼 강력한 주먹을 자랑한 이도 없었다. 그의 평가는 '압도적 승리'. 2라운드는 은퇴 후 작년까지의 삶. 자평은 완패다. 그는 "은퇴 후 권투 프로모션을 하려고 했었지만 잘 안 됐다"며 "강남에서 술집을 해서 돈을 벌기는 벌었다. 하지만 죄다 남들이 빌려가고, 나는 부도가 났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기 집을 팔아 남의 빚을 갚아주는 꼴이 됐다.
박씨는 "1·2라운드는 인생 공부한 셈치고 건설업에 승부를 걸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권투계에서 완전히 떠나진 않았다. 직접 체육관을 차린 것은 아니지만 종종 후배들에게 개인훈련도 시키고 있다. 그는 "권투는 몸에 배긴 인이라 떨쳐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의 삶이 화려하기로는 전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39)을 빼놓을 수 없다. 변씨의 프로 전적은 단출하다. 12전 10승(4KO승) 2패. 팬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오히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의 판정불복 사건이다. 밴텀급 32강전에서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패했고, 판정에 불복해 한 시간 가까이 링 위에 앉아있었다.
변씨의 인생은 복서 은퇴 이후가 더 성공적이다. 그는 1997년 한국 최초로 복싱과 에어로빅을 결합한 복싱 에어로빅을 선보였고, 2002년에는 이인영과 김주희를 발굴해 한국 여자 챔피언 결정전을 열었다. 2004년에는 IFBA(국제여자복싱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프로모터' 상을 받기도 했다.
유제두 WBC 주니어 미들급 4층 건물 올려 복싱체육관 운영 “권투밖에 몰라… 그래도 난 행복해”
변씨는 케이블 방송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한국 복싱 경기의 중계권을 알선하는 에이전트로도 일한다. 복싱 체육관과 여자 프로 복싱 프로모터 일도 한다. 변씨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복싱을 만들겠다"며 뛰고 있다. 그는 "권투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변화해야 한다"며 "권투도 K-1 같은 이종격투기처럼 볼거리가 많은 엔터테인먼트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39)씨는 '생활 권투 체육관'을 내세우는 변씨와는 반대로 서울 용산구에서 '정통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조씨는 "진짜 선수가 되겠다는 관원을 키우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선수'를 키우겠다는 그의 이상과 달리 현실은 각박하다. 수강생 중 선수가 될 재질이 있는 사람은 10명에 1명꼴. 조씨는 "조금만 강하게 다그치면 체육관에 안 나온다"고 한숨지었다.
1980년대 WBA 라이트플라이급을 지배한 유명우(44)는 수원에서 오리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권투인으로 받은 것을 권투인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강펀치로 이름을 날린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46)은 건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조인주 WBC 슈퍼플라이급 “선수 되겠다는 관원 키우고 싶은데 요즘엔 좀 세게 다그치면 다 그만둬”
조선일보 | 2008-01-12 14:5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1/2008011101181.html
'미남 복서' 박찬희, 空士에서 복싱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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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호령한 복싱 챔피언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개를 숙였다. 지난 5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최요삼 WBO 라이트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의 영결식 자리에서였다. 권투인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서 말이 없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모인 챔피언들의 겉모습에선 그들의 삶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하나의 정점(頂點)을 지나온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44)는 여전히 '짱구' 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숱이 줄어 현역시절처럼 동그란 모양은 아니었지만 파마머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요삼이가 갔으니 이제 내가 복싱계에서 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요삼이 소속된 용프로모션의 대표로 이름을 걸고 있었다.
복싱 프로모션 대표를 제외하면 지금 장씨가 가지고 있는 직함은 두 개. 건설회사 사장과 한나라당의 자원봉사단체 단장이다. 하지만 그는 "모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다"라며 "은퇴한 이후 나 혼자서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12살 때부터 복싱만 해온 사람"이라며 "링에서 주먹 쓰는 일 말고 한 게 없으니 사회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은퇴한 이후로 조금도 운동을 하지 않는다. 권투는커녕 골프도, 테니스도 안 하고, 조깅조차 안 한다고 한다. 그는 "운동할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운동이 싫어졌다"며 "1980년에 프로 데뷔해서, 경기할 때마다 10㎏씩 살을 뺐으니 싫을 만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현재 체중은 62㎏.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고, 말하는 내내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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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찍는 오른손 주먹이 강렬했던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독일병정' 김태식(50)은 지난해 5월 경기도 부천에 체육관을 열었다. 김씨는 "남을 잘 믿은 게 평생의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했던 갈빗집도, 당구장도, 커피숍도, 오퍼상도 모두 다 '아는 사람'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1980년 한 해에만 4억을 넘게 벌었던 그도 몇 번이고 사기를 당하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간신히 다시 중심을 잡은 것은 2000년. 서울 면목동 동부시장 한편에서 돼지고깃집을 열면서다. 그는 "하루 14시간 항정살에 껍데기에 부지런히 굽느라 연탄가스를 엄청 마셨다"며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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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5년 만에 권투로 귀향(歸鄕)했다. 그는 "25년이나 기다렸으니 '큰일' 한번 쳐보겠다"며 "복싱을 외면하는 방송사가 모두 달려들 만한 제대로 된 챔피언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전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돌주먹' 문성길(44)씨는 "챔피언도 은퇴하면 원칙을 따르는 평범한 사회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서울 가락동 집 거실에는 '원칙자(原則者)는 불이익(不利益)이 없다'고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철판볶음밥 체인점 4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된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치면서부터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 이 문구를 가훈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선수 생활 마지막 동안 한 제약회사의 이름을 달고 싸웠다. 그는 "회사 이름이 깔릴까봐 다운 안 되려고 엄청 신경 썼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배신이었다. 그와 회사의 계약은 '평생 이사 대우'였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니 그에게 돌아온 것은 '말단 대리 바로 옆자리'였다. 그는 "그나마도 몇 년 후에는 없어지고 사장 아들이 하는 주유소에 주유원으로 보내졌다"며 "억지로 버티면서 내가 챔피언이었던 걸 잊고, 세상을 배웠다"고 말했다.
문성길의 매니저이기도 했던 전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46)는 2005년 12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 한 교회의 목사와 결혼해, 집사로 지내고 있다. 그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교회 일을 처리하는 데 쓰고 있었다. 김씨는 "현역 때부터 챔피언만 따고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며 "체육관도 평생 배운 게 권투라서 운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 WBC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유제두(60)씨는 권투계에서 보기 드문 '안정적인 노년'을 보내고 있다. 유씨는 권투인들이 공인하는 '단 한순간도 링을 떠나지 않은 권투인'이다. 그는 은퇴한 이후로는 체육관을 운영하며 계속해서 권투에 몸담고 있었다.
변정일 WBC 밴텀급 TV해설가·에이전트·프로모터… “복싱 발전하려면 팬들에 볼거리 줘야”
유씨는 서울 독산동에 있는 자기 소유 4층 건물의 4층에 살고 있다. 지하에는 그가 직접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이 있고, 1층부터 3층까지는 세를 주고 있다. 1979년 은퇴한 그는 1983년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파이트 머니로 이 건물을 지었다. 유씨는 "시골 고등학교에서 복싱을 배워 65년부터 지금까지 이것만 하고 살아왔다"며 "복싱을 시작한 이래로 아예 다른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살았으니 난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권투의 대표 브랜드 홍수환(58) 전 WBA 밴텀급,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은 지난해 12월 29일 권투인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뽑혔다. 협의회는 고 최요삼 선수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 챔피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복서들의 단체다. 1997년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 김기수씨가 별세한 이후, 홍씨는 한국 복서들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권투 흥행을 위해 50대에 링 위에 오른 이도 있다. 전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염동균(55)은 지난해 12월 23일 충북 음성체육관에 마련된 링 위에 쓰러졌다. 발이 꼬여 넘어진 슬립다운. 그를 내려다본 상대 선수는 IFBA(국제여성복싱협회) 주니어라이트급 챔피언 우지혜(19). 경기는 주먹에 힘을 싣지 않고 기술만을 겨루는 '메서드 복싱(method boxing)'이었다. 염씨의 현재 직함은 극동서부복싱프로모션 대표다.
염씨는 권투 인기가 바닥을 치던 2001년 잠시 권투계를 떠났었다. 뛰어든 곳은 건설 골재 공급. 그는 거기서 20억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염씨는 "모르는 일을 하다보니 잘 안 됐다"며 "후배들에게도 나를 봐서 절대로 모르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의 '대학생 미남 복서'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51)도 염동균과 함께 지난해 12월 23일 성대결에 나섰다. 박씨는 케이블 방송에서 복싱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있고, 공군사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권투를 가르치고 있다. 선수로 뛸 당시에 잘생긴 얼굴로 인기가 많았던 그는 "얼굴로 득 본 건 하나도 없다"며 "대신 젊은 시절의 나를 쏙 빼닮은 아들은 영화배우 데뷔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 최요삼 선수의 유해를 안치한 납골당의 전무로도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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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급으로 80년대를 호령했던 박종팔(48) 전 IBF·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은 은퇴를 '사회라는 새로운 사각 링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을 인생 3라운드가 시작되는 해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1라운드는 권투. 링 위에서 그가 남긴 전적은 53전 46승(39KO승). 한국에서 그만큼 강력한 주먹을 자랑한 이도 없었다. 그의 평가는 '압도적 승리'. 2라운드는 은퇴 후 작년까지의 삶. 자평은 완패다. 그는 "은퇴 후 권투 프로모션을 하려고 했었지만 잘 안 됐다"며 "강남에서 술집을 해서 돈을 벌기는 벌었다. 하지만 죄다 남들이 빌려가고, 나는 부도가 났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기 집을 팔아 남의 빚을 갚아주는 꼴이 됐다.
박씨는 "1·2라운드는 인생 공부한 셈치고 건설업에 승부를 걸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권투계에서 완전히 떠나진 않았다. 직접 체육관을 차린 것은 아니지만 종종 후배들에게 개인훈련도 시키고 있다. 그는 "권투는 몸에 배긴 인이라 떨쳐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의 삶이 화려하기로는 전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39)을 빼놓을 수 없다. 변씨의 프로 전적은 단출하다. 12전 10승(4KO승) 2패. 팬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오히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의 판정불복 사건이다. 밴텀급 32강전에서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패했고, 판정에 불복해 한 시간 가까이 링 위에 앉아있었다.
변씨의 인생은 복서 은퇴 이후가 더 성공적이다. 그는 1997년 한국 최초로 복싱과 에어로빅을 결합한 복싱 에어로빅을 선보였고, 2002년에는 이인영과 김주희를 발굴해 한국 여자 챔피언 결정전을 열었다. 2004년에는 IFBA(국제여자복싱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프로모터' 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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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씨는 케이블 방송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한국 복싱 경기의 중계권을 알선하는 에이전트로도 일한다. 복싱 체육관과 여자 프로 복싱 프로모터 일도 한다. 변씨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복싱을 만들겠다"며 뛰고 있다. 그는 "권투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변화해야 한다"며 "권투도 K-1 같은 이종격투기처럼 볼거리가 많은 엔터테인먼트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39)씨는 '생활 권투 체육관'을 내세우는 변씨와는 반대로 서울 용산구에서 '정통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조씨는 "진짜 선수가 되겠다는 관원을 키우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선수'를 키우겠다는 그의 이상과 달리 현실은 각박하다. 수강생 중 선수가 될 재질이 있는 사람은 10명에 1명꼴. 조씨는 "조금만 강하게 다그치면 체육관에 안 나온다"고 한숨지었다.
1980년대 WBA 라이트플라이급을 지배한 유명우(44)는 수원에서 오리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권투인으로 받은 것을 권투인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강펀치로 이름을 날린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46)은 건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조인주 WBC 슈퍼플라이급 “선수 되겠다는 관원 키우고 싶은데 요즘엔 좀 세게 다그치면 다 그만둬”
조선일보 | 2008-01-12 14:5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1/20080111011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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