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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청계천 옆 광장시장 맛있는 서민 오아시스


[중앙일보 유지상.권혁재]

 “시장의 매력은 사람 사는 냄새죠. 언제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잖아요.”

 “오빠, 너무 고상한척 한다. 시장에 오기만 하면 ‘어디 맛있는 거 없나’하고 눈 반짝이고 코 벌렁대면서….”

 지난 20일 서울 청계천변에 있는 광장시장에서 만난 박준선(26)·정은자(25)씨. 깔끔한 분위기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답잖게 시장 좌판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지만 30도를 넘은 더위에 재래시장의 비좁은 자리에서 오래 있긴 쉽지 않은데 말이다.

 “날이 더우면 덥다는 핑계로, 비가 오면 비 오는 걸 빌미로 올 수 있어요. 땀 씻어주는 냉면이 있고, 비 오는 날 분위기를 띄워주는 빈대떡도 있으니까요.”

 “주변에선 닭살 커플이라고 말하지만 저희도 다툴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시장에 와요. 왁자지껄한 데 있으면 꿀꿀했던 기분이 싹 가시거든요.”

 둘 다 엄청난 시장예찬론자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의 꿈이 푸드 스타일리스트란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란 신문·잡지·방송에 나오는 음식을 보는 이들이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하면 음식 메이크업이다. 그러니 시장 근처를 오가는 일이 잦다. 요리의 기본 재료인 채소·과일·생선·고기를 구하러 가는 것은 기본, 음식 담을 그릇이나 식탁보를 사러 가는 건 필수다. 그러다보니 서울 시내뿐 아니라 5일장이 열리는 시골 재래시장도 구석구석 꿰뚫고 있다.

 원래 광장시장엔 식탁을 꾸밀 때 쓸 섬유 소재를 찾기 위해 다녔단다. 시장 안에 있는 먹거리 골목을 알고 난 뒤로는 시장을 찾는 목적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시장에 나왔다가 맛본 음식들이 가득 하잖아요. 만 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둘이 배 터지게 먹을 만큼 값도 착하고요.” 정은자씨의 말이다. 그래서 빈대떡과 막걸리에 발목이 잡혀 테이블보 사는 걸 다음날로 미룬 적도 있고, 칼국수 아주머니랑 수다 떨다 소품 사는 걸 까먹기도 했단다.

 “청계천이 복원되기 전에는 손님들이 주로 시장 상인이나 원단을 사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요즘은 청계천으로 놀러 나온 가족손님이 많아졌지요. 나이 드신 분들은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좋다고 하고요, 우리 또래의 젊은 친구들은 싼값에 매력을 느껴 자주 오게 된대요.”

 박준선씨의 말에 정은자씨가 한마디 더 거든다. “싼값에 왕창 먹어도 걱정이 안 돼요. 청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불룩했던 배가 어느새 쑥 꺼지거든요.”

 두 사람이 푹 빠져 있는 먹거리를 찾아 광장시장을 한바퀴 돌아봤다.


1.녹두 빈대떡

 광장시장에 들어서면 코끝에 와 닿는 고소한 냄새의 진원이자 이곳 먹거리의 대표주자다. 먹자골목 중심부에 줄지어 선 가게들엔 늘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빈대떡 소리도 덩달아 요란하다. 큼지막하게 썰어 놓은 빈대떡에서 인심이 푹푹 묻어난다. 맛보기 빈대떡으로 출출한 속을 달래다가 빈 자리가 나면 쏜살같이 엉덩이를 날려야 한다. 한쪽에선 맷돌로 녹두를 연신 갈아 넘기고, 다른 쪽에선 여기에 숙주나물 등을 넣고 반죽을 한다. 기름 넉넉하게 부은 널찍한 번철에선 쉴 새 없이 빈대떡이 부쳐져 나온다. 그래도 쌓일 틈 없이 팔려 나간다. 두툼한데도 겉은 바삭바삭, 속은 야들야들하다. 라지 사이즈 피자만 해 둘이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한 장에 4000원.

2. 순대랑 족발

 "우와! 내 팔뚝만 하네.” 여기의 순대를 보면 절로 나오는 말이다. 다른 데서 파는 순대랑 비교가 안 된다. 돼지 내장에 속을 꾹꾹 눌러 담아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삐뚤빼뚤 굵기나 모양도 일정하지 않다. 속은 당면이 아닌 찹쌀이다. 톡 쏘는 매콤한 맛이 식욕을 건드린다. 후춧가루를 제법 쓴 모양이다. 한 점만으로도 입안이 가득 찬다. 촘촘하게 들어찬 찹쌀 속이 입에 착착 감긴다. 1000원짜리 두 장이면 순대와 함께 간도 넉넉하게 썰어 담아 준다. 소주 한 병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낮 시간에 한잔이 부담스러우면 동치미 국물이라도 곁들여 옹골진 맛을 즐겨 보자.

3. 보리 비빔밥

 콩나물은 시작이다. 고사리나물·돌나물·참나물·부추·무생채·상추·치커리·오이·열무김치·배추김치·풋고추·멸치까지. 뷔페 스타일로 온갖 비빔 재료가 밥상 앞에 쫙 펼쳐진다. 양푼에 보리밥과 쌀밥을 한 주걱씩 담아주면서 양껏 골라 담아 비벼 먹으란다. 엄두가 안 나 순서대로 조금씩 담는다. 금방 양푼 가득 푸성귀가 넘쳐난다. 강된장과 고추장을 올리고 김 가루와 참기름을 떨어뜨려 비빈다. 한 숟가락을 퍼서 입에 넣으려니 반은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슬쩍 옆 사람을 보니 그도 마찬가지. 서로 계면쩍은 눈웃음을 보낸다. 씹을 때마다 풋풋한 풀 향기가 넘쳐난다. 입맛에 따라 보리밥과 쌀밥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1000원짜리 세 장에 ‘무한 리필’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

4. 손만두국

 남대문시장에 손칼국수가 있다면 광장시장엔 손만두국이 있다. 남1문으로 들어서면 시장 복판에 앉아 만두를 빚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만두피에 소를 올려 손으로 꾹 누르면 바로 완성이다. 1 분에 30개는 족히 빚는 것 같다. 만두는 집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 김치만두. 소에는 돼지고기·두부·숙주·김치·양파·부추가 들어갔단다. 만두국에 들어간 만두가 10개가 넘는다. 멸치 장국에 끓여내 기름지지 않고 담담하다. 옆 자리에서 칼국수를 주문한 할머니가 “만두 맛 좀 보자”고 하니 찐만두 두 개를 접시에 담아 낸다. 말만 잘하면 공짜 대접도 받을 만한 인심이다. 만두국·찐만두가 각각 3500원.

5. 그 밖에 …

 모둠전에는 고추전·애호박전·가지전·감자전·생선전·부추전·김치전 등 다양한 재료의 전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노상 가게에선 한 접시에 5000원인데 건물 안 음식점에선 1만원을 받는다.

 노릇노릇 익은 수수부꾸미도 있다. 검은 팥이 든 수수부꾸미와 흰팥이 들어간 찹쌀 부꾸미 두 종류. 값은 한 개에 1000원. 새알심이 동동 떠 있는 단팥죽과 노란 호박죽 등 여러 가지 죽도 있다. 한 그릇에 4000원. 삶은 문어 등과 함께 나오는 생선회는 1만원. 두 사람이 소주 각 1병을 해치울 만큼 푸짐하다. 밀가루 반죽을 도마 위에 올려 홍두깨로 밀고 쓱쓱 썰어내 끓이는 손칼국수 맛이 일품이다. 손칼국수집에선 냉면도 함께하는데 값은 각각 3500원.

광장시장은 …


서울 종로 4가와 5가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은 1905년 한성부에 등록된 서울의 공식 재래시장 1호다. 등록된 이름은 광장시장이었지만 60년대 말까지 동대문시장으로 불렸다. 6·25전쟁 후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동대문 일대까지 대규모 무허가시장을 형성했기 때문. 동대문 상권이 동대문시장이란 이름으로 독립한 뒤 광장시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남대문시장과 함께 대표적인 서울의 재래시장으로 꼽히며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을 취급했으나 요즘은 섬유원단과 한복이 주 품목이다. 실·지퍼·단추 등 의류 부자재와 침구류 등 직물과 관계된 상품도 판매한다. 청계천 복원 뒤에 남1문과 북2문을 잇는 시장길 가운데 늘어선 노상 음식점 골목으로 유명해졌다. 일명 ‘먹자 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은 내놓는 음식에 따라 네 구역으로 나뉜다. 북2문 쪽에는 빈대떡과 모둠전 가게가 몰려 있고, 동문 쪽에는 족발·돼지 머리고기·순대를 판매하는 점포가 많다. 중앙에서 남1문으로 나가는 길엔 해산물과 생선회를 파는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시장은 퇴근 후 가볍게 한잔을 외치며 들어오는 샐러리맨들로 밤늦게까지 북적거린다. 남1문 쪽의 가게들의 메뉴는 대부분 손칼국수·콩국수·냉면·만두국·보리밥·비빔밥이다. 여기는 식사 중심의 음식이다 보니 낮 시간에 손님들이 붐비고 문닫는 시간도 오후 9시 전후로 이른 편이다.

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사진=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7-08-24 0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