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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시니어

“나도 여기서 죽음 맞고 싶다” - 옌볜호스피스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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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마리오 수사와 포즈를 취한 환자 김정애 할머니.




“전에 있던 병원보다 좋아요.” 함경북도 출신이라는 김정애(76) 할머니는 “뭐가 좋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병 떨어지게 해주니까 좋죠, 뭐”라고 답했다. 김씨는 말기 암 환자. 기자가 동북3성의 유일한 호스피스병원인 옌지시 옌볜호스피스병원을 찾았을 때 이 병원에 입원중인 세 사람의 환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역시 조선족 교포인 이 병원 의사 박일남씨는 “그가 남은 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명은 차차 알려줍니다. 중국의 관습이죠.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김정애씨는 요즘 한국 TV를 보면서 소일하거나 베트남 출신의 왕요셉 수사와 화투놀이를 한다. 고향인 함경북도엔 1975년에 한 번 가봤다고 했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계속 사진을 찍자 활짝 웃으면서도 입으로는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 “늙어서 곱지 못해 미안하다”는 이 정서를 한민족이 아니면 이해할 수 있을까?

옌볜호스피스병원은 2005년 12월 옌볜제2병원과 한국 광주의 성요한병원이 합작 설립한 호스피스 전문병원이다. 조선족 교포인 이 병원 이수남 원장은 “병원 입지를 옌볜으로 정한 건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찾았을 땐 침상 수 20개인 병원에서 환자 3명을 33명의 직원이 돌보고 있었다. 그 전 주에 11명이 입원하고 있었는데 7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퇴원했다고 했다. 병원 관계자는 “호스피스병원의 특성상 단 한 명이 입원하고 있어도 간호사 등 직원은 똑같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10만 위안 안팎의 병원 수입으로는 250만 위안에 이르는 경비를 충당할 길이 없다. 병원 측은 “수도회에서 모금을 해 지원하고 있는데 2~3년 안에 한국 쪽에서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환자들의 반응은 뜨겁다고 했다. “무슨 물건처럼 취급 당했는데 이곳에 온 후로 병원 직원들이 가족 이상으로 따뜻하게 대해줘 편안해 한다”는 것.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던 물건에서 가치 있고 존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환자를 찾아온 가족들이 “나도 여기서 죽고 싶다”고 한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옌볜호스피스병원은 더 이상 치료할 길이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곳이다.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신변을 정리하도록 돕는 병원이다. 그래서 환자가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 수술 시설도 없다. 오직 통증 조절 등을 위한 투약만 할 뿐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로 개념화했다. 병원 관계자는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러 가족들과 화해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차 병명을 알면서도 서로 말을 못하다가 마침내 환자가 치료자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그동안 살아보겠다고 이 병원 저 병원 끌고 다닌 가족들한테는 미안해서 차마 말을 못하겠다”고 한다는 것. 그러면 치료자가 환자와 가족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병원 관계자는 병상이 다 채워져도 병원 수입으로는 운영비의 45%만을 조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호스피스병원은 본래 기부 문화에 의해 움직이는 병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병원은 중국에 그런 문화가 생겨나기 전에 생겼죠. 호스피스병원은 또 장례문화와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가족들도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문화혁명 이후 중국에 일반화된 화장은 이런 치료를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 사망한 지 30분 만에 체온이 채 식지도 않은 고인을 화장하기도 한다. 중국의 구 체제가 남긴 상흔은 옌볜 조선족 사회에도 이렇게 곳곳에 깊이 남아 있었다.


이코노미스트 | 2007-10-01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