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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건축/부동산,건설

고층아파트 500만명 ‘불나면 속수무책’


소방방재청 “외부 화재진압 사실상 불가능”… 초고층 건축기술 못따라가는 안전관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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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이 용역을 의뢰한 ‘초고층 건축물 화재절감대책에 관한 법률 제정 연구’의 착수 보고서(2007년 10월 12일 작성)에는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수요와 공급 증대 → 반면 화재 발생 시 화재진압이 사실상 불가능 → 따라서 초고층 건축물 자체 내에서의 안전관리가 요구”라는‘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10월 19일 소방방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또 다시 확인됐다.

유기준 의원(한나라당) 만일 고층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정말 어떻게 설명해도 힘든 상황이…. 예를 들어 언론 보도에 한 번 나오면 소방방재청이 바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산을 투입해 고가 사다리를 배치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원경 소방방재청장 의원님, 고가 사다리차 문제는요, 전 세계적으로 15층 이상까지는 작동이 현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고층 빌딩이 문제가 됩니다.

고가 사다리차가 닿을 수 없는 15층 이상 고층 아파트의 주민은 450만여 명(유기준 의원이 지난해 통계청 자료로 추산)에 이른다. 고층 아파트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감안하면 현재 500만 명을 훌쩍 넘은 셈이다. 유 의원은 “소방방재청장이 ‘불가능하다’고 순순히 답변해 깜짝 놀랐다”며 “15층 이상 사는 사람들은 바깥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이 만든 ‘고층 건물 화재대응 매뉴얼’에는 ‘고층 건물에서는 외부로부터의 고가 사다리차에 의한 화재 진압이 거의 불가능하고 소방대가 고층의 소방활동에 필요한 호스나 노즐을 반입하여 소화 작업을 실시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건물 내의 연결송수관 설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15층 이상에 고가사다리차 못 써


아파트의 화재로 주민들이 고가사다리로 대피하고 있다.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권영진 교수는 “짓는 것이야 얼마든지 높이 지을 수 있는 기술력이 있지만, 미국의 방재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지금 15층을 지을 만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현재 초고층 아파트의 방재 상태와 법규 미비를 비판했다.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제도적 안전 장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대도시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02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66층의 타워팰리스가 세워진 후 대도시에서는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소비자의 고가 아파트 수요와 건설사의 이익이 함께 ‘버무려져’ 21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이미 1만여 동을 넘어섰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살기 좋다는 이유로, 부의 척도로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전 문제는 약간은 미심쩍지만 묻어버리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타워팰리스의 50층대에 사는 ㄱ씨는 초고층 아파트의 매력에 푹 빠졌다. 편의시설과 수영장, 헬스클럽, 골프 연습장 등의 시설이 아파트 내에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천장이 높아 공간감이 넓은 데다, 밤에 창가에 앉으면 호텔보다 더 좋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ㄱ씨의 말이다. ㄱ씨는 안전에 대해서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와 같은 방재시설이 워낙 잘 돼 있는 데다 매일 점검하기 때문에 가벼운 화재가 나도 금방 끌 수 있다는 것이 ㄱ씨의 주장이다. ㄱ씨는 “화재 때 대피 요령과 피난통로 안내 등도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액정 TV를 통해 매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최근 고층 아파트에 화재가 났을 때 붕괴 위험이 있다는 보도가 나간 후 과장보도에 대해 주민들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주민들은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월 9일 신문과 방송에서는 일제히 국내 초고층 아파트가 화재 발생 시 1∼2시간 내 붕괴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한병도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이 건교부로부터 받은 ‘내화구조의 내구성 평가 및 유지관리지침 개발’이라는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50MPa(메가 파스칼·1메가 파스칼은 1㎡당 100톤의 하중을 견디는 힘)의 고강도 콘크리트는 열과 함께 하중을 같이 부여하는 재하시험에서 99.5분을 견디지만, 80MPa의 고강도 콘크리트는 57분밖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콘크리트가 화재와 같은 갑작스러운 고온에 노출됐을 때 마치 군밤이 터지듯 폭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폭렬 현상으로 붕괴된다는 것이다. 건교부의 ‘내화구조의 인정 및 관리기준 고시’에는 ‘건축물 규모가 12층 이상인 경우 기둥·보와 같은 구조 부위는 3시간 이상의 내화 성능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험체에 하중을 부여하지 않는 비재하시험(왼쪽)과 시험체에 열과 함께 하중을 같이 부여하는 재하시험.

화재경보기·스프링클러 작동 않기도

1990년대 이후 지은 초고층 건물은 대부분 40MPa 이상의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타워팰리스의 경우 1차와 2차가 50MPa, 3차가 80MPa이며, 아이파크는 60MPa의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고강도 콘크리트란 강도 범위가 40MPa 이상인 콘크리트를 말하며, 초고층 건물에서는 건물 중량을 최소화하고 유효면적을 넓히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압축한 콘크리트의 강도가 높을수록 폭렬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파장은 컸다. 건교부는 즉시 기존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스프링클러 등 소화 설비를 이용한 간접예방법과 내화페인트·내화보드 부착 등의 보강공법으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시험을 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이세현 박사는 “이 자료는 순수하게 고강도 콘크리트 내화 성능을 시험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기둥과 보의 구조 형태나 스프링클러 등의 외부 요인을 완전히 배제한 채 내화 성능만 시험했을 뿐, 실제 화재상황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측은 고강도 콘크리트에 유기 섬유인 폴리프로필렌 섬유를 혼합하는 폭렬 방지 기술을 개발해 휴맥스 빌리지, 서초 프로젝트, 탕정 트라팰리스 등의 고층 건물에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일본 오사카 시험소에 의뢰해 성능시험을 한 결과 4시간의 내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물산 측은 타워팰리스 같은 기존의 초고층 아파트에는 폭렬에 대비해 두께를 정상보다 배 이상으로 시공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기술연구소 이승훈 수석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철근 콘크리트(RC) 기둥을 대상으로 시험했지만 타워팰리스는 철골철근콘크리트(SRC) 구조로 시공했다”며 “타워팰리스의 기둥은 최소 1m(실험에서는 최대 60㎝) 이상 되며, 내화 마감재가 기둥을 둘러싸기 때문에 화재에 바로 노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병도 의원 역시 한발 물러나 “삼성물산 측의 주장대로라면 실제로 타워팰리스는 3시간의 내화 성능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건교부의 안전 기준이 갖춰지지 않더라도 건설사는 도의적으로 삼성물산의 모델처럼 내화 성능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이 박사는 “삼성물산 측이 그렇게 대비했다면 다행”이라면서 “삼성물산 측의 주장도 옳고, 한 의원 측의 주장도 옳다”고 말했다.

1주일간의 논란 끝에 초고층 아파트의 붕괴 위험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 의원 측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측의 설명에는 ‘내화 성능 보강’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한 의원 측은 “삼성물산이 유일하게 해명했다”라고 했으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측은 “내화 성능에 대해 보강 조치를 하는 회사도 있고 하지 않는 회사도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덧붙였다.

방재 전문가의 의견 역시 논란의 해명과 달랐다. 권영진 교수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시험은 최악의 조건에서 콘크리트 문제를 시험한 것뿐이지만, 삼성물산 측의 해명으로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며 “기둥이 굵으면 폭렬 현상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고층 아파트의 기술 발전에 옹호적인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윤명오 교수는 “화재의 실제 상황에서는 높은 열을 받는 부위가 이동하기 때문에 하중 분산이 일어나 건물 전체가 붕괴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고층 아파트의 구조체에는 그다지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화재로 인한 인명 손실은 구조체 붕괴보다 방재 시스템 부실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권 교수는 “인명 손실은 30분 안에 일어나기 때문에 방재 설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외국의 화재 사례 역시 대형 사고에서 방재 시스템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198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호텔에서는 화재 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85명이 사망하고 679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988년 로스엔젤레스의 62층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 빌딩 화재에서는 화재 경보기가 작동했으나 이를 무시했으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1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당했다. 2004년 베네주엘라의 56층 카라카스 빌딩은 스프링클러의 유지 관리가 불량해 누설됐다. 그리고 옥내 소화전도 사용할 수 없어 34층에서 발생한 화재가 50층까지 타올라 24시간 동안 지속됐다.

초고층 건물의 경우 고가 사다리차를 이용해 외부에서 화재를 진압하기가 어려운 만큼 화재 경보기와 스프링클러 같은 자체 방재 시설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방방재청의 문부규 소방정책본부 대응전략팀장은 “15층 이상 건물은 내부에서 화재를 진압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에 피난 계단, 스프링클러, 방화구획 등의 설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팀장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방재 설비가 제대로 작동해 초기에 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설령 초기 진화가 되지 않더라도 층별 방화구획에서 화재가 멈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타워팰리스를 관리하는 타워개발 기술팀의 이상락 이사는 “매일 가상 훈련을 하고 있으며, 화재 경보기의 경우 오작동이 나더라도 100% 열어놓는다”며 안전관리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타워팰리스 “우린 매일 가상훈련”


2002년 입주를 앞두고 마지막 공사 중인 타워팰리스.
초고층 아파트가 늘어남에 따라 실제로 초고층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화재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윤호중 의원(대통합민주신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31층 이상 건물에서 화재가 일어난 건수는 4건이었으나 2004년 6건, 2005년 25건, 2006년 29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10월 11일 서울 가락동의 한 23층짜리 초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다행히 11층에서 불이 나 고가 사다리차가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권 교수는 “초고층 건물의 화재 빈도가 미국 → 남미 → 일본 → 동남아 순으로 옮아가고 있다”며 “곧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의 다음 순서에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명오 교수는 권 교수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윤 교수는 “초고층 아파트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것은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위험하다는 생각과 같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충분히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으며, 관리만 잘 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가 법적 제도 보완에 중점을 찍는 데 반해 윤 교수는 시장경제 논리를 강조했다. 권 교수는 법적 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초고층 아파트의 높이와 건설 증가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초고층 아파트의 안전을 국가보고 보장하라고 하면 안 된다”며 “보험과 같은 시장 경제원리에 맡겨 건설사에서 안전투자를 많이 하면 보험을 감액하는 방식으로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사에서 안전 설비에 많은 비용을 투여하도록 경제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고층 아파트에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고층에 사는 만큼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건국대 심순희 교수와 강순주 교수가 공동 집필한 논문 ‘초고층 아파트 거주자의 주거 환경 스트레스와 건강’에서는 소음·승강기 및 사고에 대한 안전성 등에 대한 불안으로 스트레스 강도가 높게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외국의 연구에서 밝힌 결과와 일치했다는 것이 연구자의 주장이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스트레스의 유형 중 심리적 거주성, 승강기 및 사고에 대한 안전성, 주택 구조 및 시설의 불편, 소음 순으로 거주자의 건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호우 기자

[뉴스메이커   2007-11-01 11: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