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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시니어

노인들의 해방구 ‘콜라텍’

2천원이면 하루 종일 즐겁게...

박광우 기자 2006-12-10 오전 11:24:29  
 
▲ 노인들의 해방구로 자리잡은 콜라텍으로 노인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프리존뉴스
서울 제기동의 한 성인콜라텍. 오후시간임에도 삼삼오오 노인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선글라스를 낀 노인들부터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다. 정장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멋진 핸드백을 든 할머니가 수시로 오가고, 볼룸 댄스에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은 손님도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곳을 찾고 있다는 김모씨(72). “집에만 있으면 뭐해. 괜히 자식들 눈치만 보지.” 4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라는 김씨는 유일하게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적적함을 달래줄 수 있어 자주 찾고 있다고 했다.

콜라텍 간판을 따라간 으슥한 상가 안쪽에는 알록달록 멋을 낸 할머니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오빠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어”라며 깔깔 웃는 할머니들과 함께 콜라텍 매표원 할아버지에게 2천원을 낸 후 안으로 들어가 봤다.

노래방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수백 명의 노인들이 짝을 지어 음악이 바뀔 때마다 지루박, 블루스, 트로트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이 곳을 찾고 있는 대다수가 60을 훌쩍 넘은 노인들이라지만 한 켠에는 도우미 이름표를 달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50대 아주머니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김 할아버지는 “도우미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부킹걸’이야. 혼자 오거나 처음 오는 사람들한테 파트너도 소개시켜주고 춤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지”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실제로 ‘부킹걸’ 이름표를 부착한 아주머니들은 혼자 온 노인들의 손을 이끌어 즉석으로 다른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시켜주는 도우미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곳은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어 춤을 추다 지치면 홀 옆 식당에서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식사는 물론 간단한 주류 및 안주일체도 구비돼 있다.

500여평의 공간이 수백 명의 중장년층 성인들로 가득 찬 종로 인근의 또 다른 콜라텍. ‘어머나’에 이어 ‘네박자’ 노래가 메들리로 흘러나온다. 종업원이 한 구석에 짝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손을 잡아 이끌어 즉석에서 짝을 찾아준다. 차모씨(63·여)는 “옆에 있는 탑골공원에서 초라하게 찬바람 맞고 쓰러져 자는 것보다 여기서 하루 스트레스 다 푸는 게 훨씬 좋다”며 웃는다.

 
▲ 특별한 놀이문화가 없다보니 그나마 대화를 공유할 수 있는 종묘공원을 매일 수천 명의 노인들이 찾고 있다. ⓒ프리존뉴스
이곳의 커플들은 대략 네 부류로, 부부나 애인들은 함께 배운 사교댄스를 복습할 목적으로 이곳을 찾고 있으며 고정 파트너는 아직 춤만 함께 추는 단계. 미리 시간 약속을 하고 와서 처음엔 따로 놀다 마지막 한 시간 정도 둘만의 댄스를 즐기고 있단다.

부담 없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 부킹으로 만나 하루만 춤을 즐기고 헤어지는 ‘하루 파트너’, 3곡 정도 추고 짝을 계속 바꾸는 ‘일회용 파트너’ 등 다양한 부류의 노인들이 매일 이 곳을 찾고 있다.

원래 성인 카바레였다는 이곳은 콜라텍으로 개조한 지 1년여 만에 노인들의 해방구로 탈바꿈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곳을 찾는다는 최모씨(67) 역시 “춤추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친구도 사귀고, 하루 종일 2천원이면 돼. 옆에 식당에서 밥 사먹고, 맘 맞는 할머니랑 술도 마시고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이만한 데가 없지”라며 콜라텍 예찬론을 펼친다.

콜라텍 사장 박씨(48)는 “이곳은 노인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운동도 할 수 있는 ‘노인체육교실’”이라면서 “40년 전통의 카바레를 8개월 전 콜라텍으로 바꾸면서 퇴폐적인 분위기를 없애고 노인들의 건전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콜라텍 입장료는 남성 2천원, 여성 1천원. 용돈이 궁한 노인들도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입장료를 아예 받지 않지만 노인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이 적다. 평일엔 400여명, 주말엔 800여명의 노인들이 와서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낸다.

홀 바깥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술을 따로 팔긴 하지만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손님들은 오히려 친구 사귀기와 춤추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진모씨(55·여)는 “젊은 애들 나이트 가는 것과 우리가 콜라텍 가는 게 똑같아. 그런데 우리는 술 못 마셔. 술 마시면 힘들어서 춤 못춰”라고 말했다.

90년대 말 10대들을 위해 생겨난 콜라텍이 언젠가부터 갈 곳 없는 노인들의 해방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어 더 쓸쓸한 노년, 하루 2천원짜리 콜라텍을 유일한 낙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국외대 최영 교수는 “여가를 즐기려는 노인들의 욕구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노인문화가 바로 ‘콜라텍 문화’”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제 노인들에게도 경로당만이 아니라 더욱 활기차고 건강한 교제의 장, 레저의 장을 사회가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광우 기자 (pk1404@freezonenews.co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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